충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개 이상의 집단에 속하게 되는데, 잘 돌아보면 각 집단에서의 내 mindset이나 행동거지가 조금씩 다르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적응을 잘 하는 동물이라서 주변에 맞게 일종의 페르소나, 즉 대역 배우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가끔씩 이것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테면, 회사에서는 상사인데 동창회에서는 후배인 경우 같은 것이죠. 이럴 때, 그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납니다. 만약 그 후배가 상사로서의 페르소나를 우선한다면, 공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되겠지요. 반대라면 사적인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석이 될 겁니다. 문제는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공적인 자아를 밀어부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인데, 이 경우에 저는 그냥 예의가 없는 거라고 봅니다. 저야 뭐 야망이 불편한 사람이라서 그냥 넘어갑니다만, 본인을 위해서도 겸양의 미덕을 권하고 싶네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얼마나 쉽습니까. reputation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지요.

공유하기 버튼

싸이월드 공감트위터페이스북
 

상식 vs 몰상식

우리사회 담론의 프레임이 보수/진보로 재편된지가 몇년 되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자유주의 vs 빨갱이였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런 프레임이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담론에 숨어 있는 병적인 요소들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에 실패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사회를 "상식vs몰상식"의 틀로 다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이 기준으로 내가 반대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자. 

1. 매국노와 그의 후손이 나라 팔아먹은 돈으로 영세토록 잘살며 그 가치를 "보수"라고 참칭하는 꼴은 못보겠다. 

2. 진보의 뒤에 숨어 종북을 외치는 자들은 인정할 수 없다. 

3. 동일 노동 비동일 임금, 또는 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에 반대한다. 

4. 갑과 을의 불평등에, 그런 구조를 묵인하는 법의 불평등한 제정과 집행에 반대한다. 

5. 죄 있는 자는 끝까지 죄를 밝혀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 죄지은 자의 벌을 합당한 이유없이 경감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를 보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요구되는 자의 죄는 더욱 무겁고 철저히 대가를 요구해야한다. 

6. 지속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기득권에 반대한다. 놀고 먹는 공무원, 정치권만 바라보는 무능한 검사들의 자리는 없어져야한다. 

7. 교육의 기회는 평등해야한다. 

공유하기 버튼

싸이월드 공감트위터페이스북
 

일상다반사

돈이 안돈다. 부자들이 돈을 안써서 그렇다는데. .. 근데 생각해보면 부자들이 길거리에 돈을 뿌리고 다니지 않는 한 하루에 아홉끼를 먹거나 옷을 두세겹씩 껴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부자들이 소비를 해야 경기가 살아 날까? 그리고, 세금 깎아 준다고 부자들이 안하던 소비를 더 하나? 내 생각에는 세금 깎아주면 소비를 늘리는 계층은 오히려 절대 빈곤층이 아닐까 싶다. 보건소에서 애들 무료 백신이라도 놔주고 급식비라도 아낄 수 있으면 그렇게 아낀돈으로 하다못해 천원짜리 도넛이라도 사 줄 수 있잖아. 체감 경기가 살아 나려면 서민들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 와야 하는데 그러자면 서민들이 돈을 쓰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서민들의 수입은 대부분 서민들의 소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민에게 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을 주어야 체감 경기가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저소득층의 주머니에서 돈을 말려버리는 정책들만 펴고 있으니..서민들의 소비로 살아가는 차상위 계층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고, 국가 전체로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서 대기업마저 타격을 줄 것이다. 대기업들이야 수출로 해결하면 된다고 하지만 피해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공유하기 버튼

싸이월드 공감트위터페이스북
 

2008년 7월 31일 우뎅이의 미투데이 미투데이

  • 성공해야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인생이다. 2008-07-31 12:57:47

이 글은 메디토님의 2008년 7월 31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공유하기 버튼

싸이월드 공감트위터페이스북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일상다반사

누군가에게 훈수를 둔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 참기 힘든 유혹이다. 천성이 그래서인지, 나는 꽤 잘난 체를 하고 다닌다. 그러다보면, 쓸데 없이 감놔라 대추놔라 하다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던 누군가에게까지 비호감 캐릭터로 전락하기가 일쑤다. 그래도 조금은 다행인 것은, 가끔은 나도 이런 나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것인데,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다가, 또는 국에 밥숟가락을 담그다가 문득 제 3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게 되면, 어줍잖은 지식과 허세로 떠들고 다닌 내가 부끄러워 정말이지 그게 나혼자 있을 때조차도 얼굴이 붉어지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진다. 어찌보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어깨에서, 가슴에서, 머릿속에서 "뽕"을 빼 내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힘을 조금 빼고, 현실을 바로 볼 때 얻을 수 있는 것, 어른이 되면서 느끼는 것은 (지금도 나는 내가 충분히 어른인지도 모르겠지만.. ) 바로 그렇게 어릴 적 동경하던 삐까 뻔쩍한 무언가가 실은 아무것도 아닌 허식이며 오히려 그 반대편의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빛나는 것이야말로 진리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충분히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반대로 점점 어려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머릿 속에 더 많은 지식이 쌓여 갈수록, 나의 잘난체도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니 말이다.

공유하기 버튼

싸이월드 공감트위터페이스북
 

1 2 3 4 5 6 7 8 9 10 다음